주방을 넓히는 대신, 거실과 주방의 자리를 아예 맞바꾸자고 제안드렸습니다. 넓은 쪽을 주방으로 쓰고 기존 주방 자리를 거실로 돌리면, 벽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원하시던 넓은 주방과 아일랜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. 내력벽은 그대로 두고 공간의 역할만 바꾸는 방식입니다.
문제는 배관이었습니다. 주방을 옮기려면 급수·배수 위치를 다시 잡아야 하는데, 보통은 이것 때문에 공사비와 기간이 크게 늘어납니다. 다만 이 현장은 바닥 난방배관을 교체하기로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. 어차피 바닥을 전부 걷어내는 공사라, 그 김에 배관을 함께 옮기면 추가 부담이 크지 않았습니다. 구조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이 타이밍 덕분입니다.
자리를 옮긴 뒤에는 배치를 다시 짰습니다. 긴 아일랜드와 식탁이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게 두어, 조리에서 배식, 식사까지 몸을 크게 돌리지 않고 연결됩니다. 기존 평면에서 꺾이던 동선이 한 줄로 펴진 셈입니다.
마감은 미니멀하고 깔끔한 분위기를 원하셔서 연한 톤의 우드와 베이지를 기본으로 잡았습니다. 색을 여러 개 쓰지 않고 두 가지 톤으로 집 전체를 이어, 넓어진 주방이 거실과 따로 놀지 않도록 했습니다.
공사 후 이 집의 중심은 주방이 되었습니다. 온 가족이 아일랜드에 둘러설 수 있고, 조리대에서 식탁까지 한 번에 이어집니다. 이 현장을 "주방을 크게 만든 집"으로만 부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. 가족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의 자리를 집 안에서 다시 결정한 사례에 가깝습니다.